내면취재 17년의 여정

그래 딱 일주일. 그렇게 작정하고 시작했던 내면취재가 17년이나 걸렸다. 많은 사연이 있었다. 고비도 적지 않았다. 그러나 이제는 왠만큼 가닥이 잡혔다. 또 그 결과를 먼저 스스로 재확인하고 그런 다음 주변과도 공유하는 게 저널리스트로서 일종의 책무처럼 느껴진다.



저널리즘은 주로 외부세계를 대상으로 한다. 그런 흐름을 거슬러 홀로 내면취재에 뛰어든 건 순전히 개인적인 동기 때문이었다. 

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그로키 상태에 빠졌던 42살의 가을, 차라리 죽고 싶었던 그 시간들이 운명처럼 나를 내면세계로 이끌었다. 그로 인해 많은 것이 달라졌다. 그리고 지금은 내면세계와 조우했던 그 힘겨웠던 과정들이 도리어 행운처럼 여겨진다.

한 사람에게 의식이 차지하는 비율은 20%정도에 불과하다. 나머지 80%는 무의식 내지 잠재의식의 영역이다. 그건 이미 상식에 속하는 사실이다.

또 그기에 부응해 외부세계 역시 20대80으로 갈라진다. 20%가 80%의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. 이른바 파레토 최적으로 불리는 현실이다.

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문제를 의식 차원에서만 풀려고 한다. 그러니 한계에 부딪히면서 근본적인 해법을 찾기가 어렵다. 다들 악착같이 살면서도 왜 사는지는 잘 모른다. 각고의 노력 끝에 성공을 움켜잡더라도 반드시 행복하지만은 않다. 수시로 자학에 시달리면서도 그 이유를 잘 모른다. 성공했건 실패했건 마음 한구석이 늘 허전하다. 왠지 길을 잃고 헤메는 듯 불안하다. 

그런 나날들이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는  중병에 덜컥 걸린다. 그러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. 치유를 위해 안간힘을 쓸수록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더 커진다. 수렁에 빠진 것과 비슷한 형국이다.   

   



다행히 굿뉴스도 있다. 시선을 내면의 영역으로 돌리면 상황이 빠른 속도로 호전될 수 있다는 것이다.  

80%를 차지하는 내면세계를 정돈하는 것은 20%의 의식영역을 붙잡고 고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. 꼬였던 문제들이 하나, 둘 근본적으로 정리가 된다. 현상의 이면에 감추어진 본질적인 원인도 서서히 이해가 된다. 본성에 대한 통찰에서 나오는 벅찬 희열을 맛보면서 시야도 더 넓어질 수 있다.

저널리즘은 이렇게 중요한 영역을 아직도 그대로 방치해두고 있다. 

일차적인 이유는 그 세계를 다룰만한 역량이 없기 때문이다. 내면세계는 학력이나 경력, 조사기법만으로 알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. 저널리스트 자신이 그  속으로 뛰어들어 몸과 마음으로 부딪히고 직접 증득을 해야만 비로소 접근이 가능한 영역이다. 

또 하나,  대중을 납득시킬만한 마땅한 검증수단이 없다는 점도 제약요인으로 작용한다.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으면, 객관적인 수치나 데이터가 없으면 이슈로 만들기 어려운 게 저널리즘의 현실적인 한계이기도 하다.

그렇지만 시대가 달라졌다. 세상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. 단순한 구호처럼 들렸던 21세기의 3대 키워드가 점점 더 구체화되고 있다. 남성에서 여성으로, 수직에서 수평으로, 이건 이제 상식이 됐다. 물질에서 정신으로, 이것도 갈수록 그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. 

UN 미래보고서를 보면 21세기엔 일자리의 80%가 소멸된다고 한다. 왠만한 일은 컴이나 로봇이 사람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처리한다. 앞으로 사람이 할 일은 기계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영역, 즉 마음과 영성분야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.


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여전히 한박자가 늦다. 이건 왠지 아닌 것 같은데? 다들 그렇게 불안해 하면서도 낡은 패러다임을 움켜잡고 놓치를 못한다. 신속하게 섭렵해야 할 마음의 영역을 극소수 양자물리학자나 영성가들의 전유물 정도로만 여긴다. 그런 틈을 비집고 일부 사이비들이 마음을 빙자해 혹세무민하거나 고귀한 영혼을 농락하는 악행도 끊이지를 않는다.


이제 더 이상은 안된다. 멘탈, 즉 마음과 영성의 영역도 80%를 차지하는 일반 대중들이 자연스레 익히면서 운전처럼 편리하게 일상의 도구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. 물질에서 정신으로 넘어가는 이 시대에 사람들의  '정신적 생필품'이 되어야만 할 것 같다. 저술같은 1인 미디어를 통해서라도 멘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.

물론 이 책은 일차적으로 자신을 위해 썼다. 우연처럼 시작했던 내면순례가 왜 그렇게 길어졌는지, 알고보면 너무나 간단한 그 논리를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몸으로 받아들이는 게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복기를 해보고 싶었다. 그리고 글을 쓰면서 스스로 진한 위로를 받았다. 

동시에 한 영혼의 여정을 가감없이 드러내 타산지석의 자료로 제공할 필요성도 느꼈다.  개인적인 시행착오의 기록이 다른 사람들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속도를 단축하는 데 가이드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보람이 있다. 속도가 생명인 디지털 시대, 멘탈 영역의 크고 작은 과제들도 해결이 빠르면 빠를수록 더 좋지 않겠는가.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  행운을 빈다.

#내면취재 #17년 #시행착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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